Niigata. Japan. 2018. 9.

posted in: Digital, 여행 | 0

2018년 9월. 또 일본이었다.

그 당시까지는 시간을 길게 내기 어려운 직장인들이 여행삼아 다녀 올 곳으로 일본만한 곳도 없었다. 비행기 왕복 두시간 내외, 적당한 구경거리 놀거리, 교통 인프라 등등. 그래서 2018년 여름여행도 부모님과 다녀 올 생각에 니가타 여행 준비를 끝냈다. 작년에 료칸 온천여행이 괜찮았어서 이번에도 온천여행을 계획했고, 적당한 곳 몇군데를 물색하다가 직항이 있고 항공권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니가타가 낙점되었다.

그리고 여행 전날, 오사카에 대형 태풍이 상륙한다는 소식이 뉴스에 멈추지 않고 나왔다. 니가타는 간사이 지역과 거리가 멀어 괜찮겠지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어쩔수 없었다. 행운을 빌며 다음날 여행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공항으로 가기 위해 짐을 차에 싣고 공항으로 가는 길, 라디오에는 여전히 일본에 태풍이 상륙한다는 뉴스가 계속 들려왔다. 한국은 날이 이렇게 맑은데. 괜찮으려나, 결항은 안되려나 하는 걱정은 멈추지 않고. 다행히 한국의 날씨는 좋았고, 공항에 도착해 출국 수속이나 항공편 지연 없이 무사히 이륙할 수 있었다. 괜한 걱정이었으려나.

두 시간이 조금 안되는 비행 끝에 일행은 일본 니가타 공항에 도착했다. 간사이 지역과 거리는 좀 있었지만 그래도 대형 태풍인 탓에 니가타까지도 영향이 꽤 컸다. 바람이 심하게 불었고 하늘은 잔뜩 찌푸린채 비가 내리다 말다를 계속 했다. 뉴스에서는 연신 간사이 공항의 침수 소식이 흘러나왔고, 다리를 지나가던 차가 바람에 날리는 장면과 집이 바람에 뜯어져 날아가는 모습이 거짓말 처럼 반복됐다. 이거 괜찮으려나 하는 생각을 하며 공항버스를 타고 니가타 역으로 향했다.

첫번째 목적지는 에치고 유자와. 에치고 유자와는 소설 설국의 배경으로 알려진 곳이다. 산지로 둘러싸인 에치고 유자와 지역은 온천도 유명해 겨울이 성수기로 통하는 지역이다. 겨울 스포츠를 잘 모르는 촌사람된 입장에서는 그저 온천만 보고 올 수 밖에. 주변에 소소하게 돌아볼 수 있는 전망대와 녹지공원이 있어 온천욕과 산책을 생각하고 온천여관을 예약했었다. 니가타에서 에치고 유자와로 향하는 열차표를 구입해 이동을 시작했다. 니가타에서도 내륙의 산지에 위치한 유자와 지역이라 신칸센으로도 약 40분이 걸렸다. 여전히 비는 내리는데 우산이 없어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 숙소까지 이동했다. 원숭이가 전선을 타고 어디론가 부지런히 뛰어가는 장면을 보며 뭔가 만화같다는 생각을 하며 온천에 도착했고 이동하느라 지친 몸을 온천욕으로 풀었다. 아무래도 여름 휴가철도 지났고, 단풍구경을 할 철은 아니다 보니 여행자들도 별로 없었고 문을 닫은 가게도 많았다. 그래도 문 연 곳을 어떻게 찾아 가족과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와 긴 첫날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간사이 지역에 큰 피해를 남긴 태풍은 유유히 일본 육지를 지나 태평양으로 빠져 나갔고, 에치고 유자와 지역의 날씨도 점점 안정되어 갔다. 아침에 조식을 먹고 나서 근처의 유자와 고원 공원을 보러 출발했다. 아래에서 대형 케이블카를 타고 고원의 중턱까지 올라 그곳에 구성되어 있는 식물원을 구경할 수 있게 꾸며진 공원이었다. 늦여름의 야생화들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산위에 있는 공원이어서 공기도 제법 맑았다. 단 한국과는 다르게 아직 여름이 끝나지 않아 그런지 선선한 느낌을 받을수는 없어 아쉬웠다. 구경을 마치고 산 아래로 내려오니 날씨는 쨍쨍. 이제 태풍의 영향은 끝난 것 같았다. 숙소 체크아웃 후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에치고 유자와 역으로 이동했다. 일본 내에서도 좋은 쌀과 물로 유명한 니가타는 일본술도 유명한 동네이다. 술의 제일 중요한 원료인 물과 술이 좋으니 술맛도 좋을 수 밖에. 덕분에 니가타 현 한곳에도 수백군데의 양조장이 있다고 하는데 그 수백곳의 술을 한곳에서 맛 볼 수 있는 곳이 유자와 역 안에 마련되어 있다. 폰슈칸이라는 곳인데, 이곳 외에도 니가타 역에도 같은 곳이 있다고 한다. 에치고 유자와 역에는 사케로 목욕을 해볼 수 있는 곳도 있다고 하니 참고. 아버지와 폰슈칸에서 맛난 술 몇잔으로 목을 축이며 기차 시간을 기다려 다시 열차를 탔다.

니가타 역까지는 신칸센으로, 니가타 역에서부터는 재래선 열차로 갈아타 다시 길을 재촉했다. 몇정거장 떨어진 도요사카 역에서 내려 온천마을까지 들어가는 버스를 마지막으로 갈아 타 목적지 온천마을에 도착했다. 두번째 목적지는 게츠오카 온천마을로, 생각보다는 오랜 역사를 갖고있는 온천마을은 아니었다. 약 100여년 전 니가타 지역에서 석유 시추를 위해 탐사를 하는 과정에서 온천을 발견하게 된 것. 석유 대신 터진것은 온천이었지만, 그 온천을 잘 발전시켜 온천마을로 자리를 잡은게 게츠오카 온천마을이 된 것이다. 한참 번성한 온천마을이 아니라 한 철 지난 온천마을의 느낌이 강한 게츠오카 온천마을이었지만, 번잡하지 않고 여유가 있는 마을의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다만 동네가 작다 보니 식당이나 카페 같은게 잘 발달 된 곳은 아니어서 무언가를 먹으러 가거나 사러 가는게 쉽지 않았다는건 아쉬웠다. 2017년에 다녀온 홋카이도의 온천들에 비하면 엄청 시골마을의 느낌이 강한 곳. 비교적 일찍 도착했지만 짐을 풀고 얼른 온천욕을 즐기고 근처의 괜찮은 초밥집을 추천받아 저녁으로. 숙소로 돌아와 아버지와 간단하게 한잔 더 한 뒤 둘째날을 마무리 했다.

셋째날 아침 뉴스에는 뒤집어진 땅과 무너져 내린 집들이 보였다. 내용을 보다보니 홋카이도에서 큰 지진이 있었던 것. 출발은 태풍과 함께 했는데 여행중엔 지진이 났다. 홋카에도에서 난 지진이라 직접적인 영향은 없었지만, 아주 편한 마음으로 여행을 하기엔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그래도 여행은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에 셋째날의 목적지로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목적지는 시바타의 이치시마 주조. 숙소 가까운 곳에 양조장이 있다는 이야기에 그곳을 잠시 둘러보고 점심을 먹고 오기로 하고 출발했다. 이치시마 주조의 홍보관이라고는 해도 별 다른 전시시설은 없었다. 과거에 사용했던 발효조나 양조용품들을 잘 정리해 설명을 해 놓은 정도. 그래도 당시에 어떤  도구들로 술을 담궜을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라 아쉽지만 둘러 볼 만 했다. 그리고 몇가지 술을 시음해 보고 저녁때 가족과 함께 할 술을 한병 사서 근처의 정원을 보러. 세이스이엔(청수원)이라는 정원인데, 지역의 주요도시는 아니지만 규모있게 꾸며져 있는 정원이라 둘러보는 재미가 괜찮았다. 아무래도 작은 동네에 여행 성수기도 아니다 보니 점심 먹을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쇠락한 지역 소도시의 상점가는 문 닫은곳이 연 곳보다 더 많을 정도였으니. 역 앞의 문 연 식당을 겨우 찾아 점심을 먹고 커피 마실곳은 찾지도 못한 채 택시를 타고 숙소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직은 더위가 가시지 않은 9월 초의 날씨에 해까지 쨍쨍하다 보니 부모님도 지친 기색이 보여 무리하지 않으려다 보니 빨리 귀가하는걸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 열기도 식히고 한숨 돌린 뒤 온천마을 한바퀴 산책을 하고 저녁을 먹었다. 주변에 높은 건물들이 없고 있어봐야 5층 남짓의 건물들이니, 조금만 벗어나도 트인 벌판이 보여 눈이 시원해 지는 동네였고, 걷기에 나쁘지 않았다. 셋째날도 이렇게 마무리.

넷째날은 니가타 시내를 둘러볼 계획으로, 온천에서 노선버스와 JR열차를 타고 니가타 시내로 나갔다. 첫날부터 교외로 시골로 돌다가 번화가로 나오니 번화가는 번화가 나름대로 편리함이 좋았다. 며칠동안 아쉬워 했던 커피도 도토루 커피에서 해결하고, 시티 투어 버스로 니가타 시내의 곳곳을 돌아봤다. 도키 멧세에 있는 전망대나 시내의 고택 그리고 동해바다에 접해 있는 수족관 까지. 걸어다니느라 내색은 안하셨지만 조금은 힘들어 하셨던 두분도 넷째날 시내 구경은 덜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고 마을 밤산책을 한번 더 한 뒤 숙소 근처에 있는 족욕장에서 노천 족욕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다섯째 날은 점심 나절에 귀국 비행기 편이 잡혀있어 별 다른 일정 없이 마지막 온천욕을 하고 짐을 챙겨 공항으로 이동했다. 숙소에서 시내로 가 공항으로 가기는 번거롭고 시간이나 비용적으로도 별 차이가 없는 덕에 바로 택시로 이동하기로 하고 차를 불렀다. 그래도 친절한 기사님 덕분에 편하게 공항에 도착했고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번 일본여행을 마지막으로, 일본을 가족여행으로 갈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 지금이야 코로나19 바이러스로 해외 이동도 쉽지는 않지만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자연재해 때문에 부모님이 불안해 하시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 나중에 어머니 이야기를 들었을때도 뉴스에 자꾸 나오는 재해 소식에 마음이 편하지 않으셨다고. 개인적으로 다녀올 일은 있어도 가족여행은 다른 목적지를 생각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가는 여행은 너무 교외로 나가는 일은 없게끔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잦은 일본 방문으로 어느정도 방심을 했던탔도 있지만, 제대로 된 사전조사 없이 찾아간 마을은 문이 열지 않은 곳도 많았고, 식당의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아 부모님이 조금 불편해 하시는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좀 더 깊이 생각해 여름 휴가를 생각해 봐야 겠다는 계기가 되었던 여행이다. 아쉬운 점도 있긴 했지만 좋은 기억도 남아있으니, 좀 더 좋은 여행이 될수 있게 좀 더 준비를 잘 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짧은 여행 기록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