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leiflex MX-EVS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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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방형 사진과의 첫 만남.

정방형 사진과 처음 만났던 때가 언제쯤일까? 그 때를 다시 기억해 보려면 시간의 태엽을 꽤 많이 돌려야 할 것 같다. 15년 정도…?

사진을 막 찍기 시작하고 얼마 안된 그 때 사진동호회 게시판에서 정사각형으로 생긴 사진을 만나게 되었다. 네모진 프레임 안에 잘 정돈된 피사체들은 좌우로 길쭉한 사진이나 위아래로 길쭉한 사진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당시 정방형 사진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었다. 소형 카메라 중에서는 탁소나(TAXONA) 라는 작은 클래식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볼 수 있었고, 중형 카메라 중에서는 단연 핫셀블라드와 롤라이플렉스가 도드라졌다. 그땐 무언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였지만, 탁소나 보다는 중형 필름을 쓴다는 그 롤라이플렉스가 눈에 와 박혔다. 그 카메라가 아니면 안될 것 같았다. 그렇게 정방형 사진을 향한 열병은 시작되었다. 알고보면, 이것도 꽤 오랜 병인 것이다.

천리길도 한걸음 부터. 머나먼 대륙에서 온 사촌 동생을 만나다.

그 사촌동생의 고향은 의외로 중국에, 실 거주지는 한국이었다. 장날의 시장을 걷던 어느날 유난히도 눈에 띄는 좌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고물상’

각종 놋쇠그릇에 도자기 부터 철지난 다이얼 전화기, 곰방대, 화로까지 없는게 없다. 그런데 저기 눈이 두개 달린 낯이 익은 동생이 앉아있다. 아 외로이 앉아있는 동생을 그저 둘수는 없지. 그렇게 그 동생과 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판형은 내가 알던 그것과 같은 120이었지만 많은 부분들이 좀 더 헐한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었다. 친절하게도 원활한 다중노출이 가능해, 현상 후엔 그 친절함에 저절로 무릎이 접히기 일쑤였다. 덕분에 처음의 즐겁던 촬영이 후에는 고행으로 변하는 기적을 체험하기에 이르러, 서서히 이 사촌동생은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목단 사용기는 여기서.

새로운 시작.

기억에서 정방형의 사진들을 억지로 지워가며, 더이상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될 무렵, 새로운 인연이 다가왔다. 취업 후 일을 하기 시작하며 적당한 값의 롤라이플렉스를 수소문해 두었던 어느날, 너무나도 아름다운 가격의 롤라이 플렉스가 내게로 왔다.

처음 가격을 들었을 때, 제대로 된 카메라인지 아닌지도 의심이 갈만한 가격이었다. 물건이 오고 확인을 마친 뒤 내게 온 메세지는 이랬다.

“이거 카메라 상태가 영 아니네. 외관도 너무 허름하고 가죽도 상태가 안좋아. 사용감이 엄청나네. 그래도 렌즈는 꽤 괜찮고 셔터나 조리개는 잘 움직이네. 써볼래?”

내 대답은 물론

“콜. 입금 할게요.”

여기서 부터 나와 Rolleiflex MX-EVS 와의 꽤나 오랜 인연은 시작된다. 이게 벌써 2013년의 이야기다.

사진을 만들어 가는 재미

Rolleiflex의 셔터 장전은 일반적인 카메라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게 우측에 달린 크랭크 손잡이를 잡고 반바퀴를 돌린 뒤 반대방향으로 반바퀴를 다시 돌려야 한컷이 장전된다. 이게 번거로워 보이지만 익숙해 지면 빠른 셔터장전이 가능하며, 무엇보다 손맛이 독특하다. 이 손맛 덕분에 사진을 찍는 재미가 두배가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초점은 자주찍는 거리인 2m~3m 정도로 조절해 두고 파인더를 보며 빠르게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누른다. 처음엔 웨이스트레벨 파인더로 보며 포커스 맞추기가 쉽지는 않지만 자꾸 사용하다 보면 어느순간 이정도로 보이면 초점이 맞는거구나 싶은 때가 온다. 포커스가 맞았다면 셔터를 누르자.

이런 조작 뿐 아니라 묵직한 금속의 느낌과 정교하게 맞아 돌아가는 기어의 느낌은 역시 기계식 카메라에서 느낄 수 있는 신뢰감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Rolleiflex MX-EVS(Rolleiflex Automat 6×6 K4B2) 이다. 허름하지만 아직도 믿을만 한 카메라. 뷰잉 렌즈와 테이킹 렌즈 사이 양 옆에 셔터와 조리개를 조절할 수 있는 다이얼이 달려있다. 별다른 조작이 없다면 한 EV값으로 커플링되어 셔터와 조리개를 동시에 바꿀 수 있으며, 왼쪽 다이얼의 가운데 버튼을 누르면 커플링을 해제하고 셔터와 조리개를 별개로 조절할 수 있다.
Rolleiflex는 CarlZeiss의 렌즈를 주로 사용하지만 내 MX-EVS의 경우는 Schneider의 Xenar 렌즈를 사용했으며, 기본적인 구조는 Tessar와 같은 구조를 사용했다고 한다. Taking 렌즈의 아래쪽에는 셔터버튼과 스트로보 씽크 단자가 있다. 그리고 하판의 동그란 부분은 삼각대 어댑터 이며 뒷판을 고정하기 위한 Locker도 볼 수 있다. 사진상 왼쪽의 저 흰 막대가 셔터 장전을 하기 위한 크랭크다.

전성기의 발견.

정작 구입을 해 두고도 관상용 카메라에서 멈춰버린 이 카메라의 운명은 안타까웠다. 가끔 분기별 행사 꼴로 종종 들고나가 셔터를 눌렀고, 간신히 간신히 고장나지 않았다는 확인만을 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중 한 해의 절반을 베트남에서 보내는 해가 찾아왔고, 그 2017년 부터 내 Rolleiflex의 전성기는 시작되었다.

2015년부터 RF를 접하면서 거리 사진을 찍게 되었고, 거리에서의 자연스러운 촬영은 언제나 못 다 한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출장길에서 롤라이 플렉스를 사용하게 되었고, 1년간 3번의 출장을 항상 나와 함께하며 누구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자연스러운 사진을 남길 수 있게 해줬다. ‘이거구나!’

그리고 하노이.

하노이는 보행자에게 그렇게 친절한 장소가 아니었다. 바쁘게 오가는 자동차 사이로 혹시라도 빈 틈이 생길까 걱정이라는 듯 꽉꽉 채운듯 오토바이가 다니고, 그 사이사이를 자전거가 누비며, 그런 길을 횡단보도와 상관없이 건너는 사람들. 내가 느낀 첫 하노이의 길은 그랬다.

그 길 위를 걸으며 사방에서 오는 사람과 오토바이 그리고 자전거를 피하랴, 피사체 찾으랴, 셔터 누르랴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이었다면 이건 엄청나게 부담스럽고 피곤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출장지에서 내가 집중하고 주중의 업무를 잊을 수 있게 해주는 일은 사진이었기에 내게는 이 자체가 즐거운 액티비티였다. 길을 오가며 사진을 찍고,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집중하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그저 정신없는 길이 아닌 하노이 사람들이 삶을 이어가는 장소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내 시간을 빛내주는 친구.

40도가 넘는 무더위에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에도, 선선하다 못해 서늘함이 감도는 하노이의 겨울에도 Rolleiflex MX-EVS는 나와 함께 했다. 하노이에서 더이상 먼 곳으로 떠나지는 못했지만, 이 카메라가 나와 함께해 준 덕분에 더 깊이,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단순한 카메라가 아닌, 일 주일 중 단 하루의 쉬는날을 빛나게 해 준 진짜 고마운 친구였던 Rolleiflex MX-EVS.

2018년엔 새로 들인 중형카메라인 GW690III 덕에 한동안 손에서 좀 멀어져 있었지만 2018 연말 출장길에 다시 잡은 Rolleiflex는 역시나 묵직한 신뢰로 다가왔다. 내가 보는 세상 보다 조금만 더 아름답게 남겨준다면 무엇을 더 바랄게 있을까. 오래오래 고장나지 않고 함께 하고 싶은 카메라인 Rolleiflex MX-EVS 사용기를 여기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