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 나는 밥상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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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지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과, 정갈하니 크게 꾸미지 않은 반찬 몇가지.

밥은 일단 잘 불린 쌀과 몇가지 잡곡-현미와 흑미, 보리와 기장에 검은콩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을 더해 압력밥솥으로 찰기를 잘 돋구어 지어낸 밥이면 참 좋겠다. 다 지어진 밥을 주걱으로 슥슥 저어 한 번 뒤집어 주고, 맨 위로 떠올라 있는 잡곡들을 밥들 사이사이로 잘 섞어주면 밥 먹을 준비는 끝.

그리고 질 익은 김장김치를 독에서, 혹은 김치냉장고에서 바로 꺼내 도마에 올린다. 아까운 국물이 줄줄 흐르기 전에 배추김치를 슥슥 자른다. 칼이 지나간 배추 심지 주변은 하얗게 드러난 단면이 싱그러운데, 그 느낌은 바로 김치조각 하나를 집어 꼭꼭 씹어보면 눈으로 보이던 그 모습과 어금니, 혀에 닿는 식감이 비로소 한박자를 이루는 느낌이 든다.

거기에 덜도말고 더도말고 하나 더 있으면 좋은것이 잘 구워진 김이다. 김에 참기름을 살짝 바르고 잘 달궈진 프라이팬에 빠르게 그리고 김의 색이 싱그러운 초록으로 바뀔 때 까지 몇번을 뒤집어 준다. 그렇게 구워진 김을 내려놓고 가볍게 소금을 뿌려 마무리. 그렇게 여러장을 쌓아 겨우내 먹을 김을 준비하면 한 끼 밥상을 위한 모든 준비가 마무리 된다.

잘 지어진 밥 한공기를 뜨고, 잘 재워 구운 김을 먹기좋게 썰어 밥상에 올리며, 김치는 먹기 좋게 쑹덩쑹덩 썰어 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린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에 적당한 크기로 썬 김치를 싸기 좋게 젓가락으로 쪽쪽 찢어 밥 위에 올리고, 잘 구워 둔 김을 한장 그 위에 올려 젓가락으로 지긋이 눌러 밥을 잡으면 간단한게 만드는 한 입 김밥이 하나 만들어 진다. 이걸 입에 넣어 꼭꼭씹으면, 바삭한 김의 식감을 시작으로 아삭이는 식감의 김치와 탄력있는 밥알과 잡곡의 촉감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여기에 곁들일 시원한 동치미 국물과 잘 끓여낸 따끈한 누룽지와 숭늉 한 그릇이라면, 보름달 부럽지 않게 부풀어 오르는 배도 아쉽지 않을 만한 겨울 밤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