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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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더 조용한 아침이었다. 귀가 멍 한건가 싶었다.

전날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고 늦게 집에 들어온 탓에, 쉽게 잠이 깨지 않았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귀가 더 멍한건가 생각했다가 다시 선잠에 들 무렵,
“눈온다.”
어머니의 이야기에 안경도 쓰지 않은 눈으로 창밖을 보니 비처럼 눈이 내리고 있었다. 꽤 많이 올 눈 같아 보였고, 잠깐 사진을 찍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은 쉽게 움직여 지지 않았다.
‘뭐 한참 더 내릴 텐데…’
그 상태로 30분은 더 지나서, 애써 정신을 챙겨 자리를 털고 일어나 씻고 나갈 채비를 간단하게 마친 뒤 문을 열었다. 웬걸. 벌써 눈은 그쳐 있었다. 거기에 눈 온 날씨 치고는 날도 푹해서 눈이 벌써 녹고 있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한다.

 

 

 

 

 

 

 

 

대문을 나서기 전부터 여기저기 쌓여있는 눈을 찾아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올해 초 몇 번 본 눈 이후로 오랜만의 눈이었다. 꽤 많은 양이 왔는지 신발은 제법 눈 속으로 들어갔고, 점점 녹기 시작한 눈은 곤죽이 되어가고 있었다. 재래시장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람이 별로 없지 않을까, 뭘 찍을까 걱정하며 걷던 나는 시장에 도착하자마자 괜한 걱정이었던것을 깨닫고 사진 찍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생활을 이어나가야 하는 직접적인 장소인 시장에 눈이 쌓이는건 상인 분들에겐 큰 문제였고, 그래서 그런지 일찍부터 부지런히 눈을 치우고 계셨다. 눈을 치우는 상인분들, 그 사이를 이리저리 피해서 가는 행인들, 그리고 한장이라도 더 담으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 나까지. 여러사람들의 선이 자연스럽게 얽히며 바닥에 발자국을 내고 있었다.

 

 

 

 

 

 

 

 

 

 

 

 

 

 

 

 

 

 

 

 

 

 

 

 

눈은 점점 더 녹고 발은 점점 더 얼어 갈 무렵 카페가 눈에 들어왔고 카페에서 잠시 몸을 녹였다. 맨손으로 사진을 찍으며 얼었던 손이 따뜻한 커피 덕에 좀 풀리자, 좀 전까지 얼어있었던 손이 문득 생각나 이제 가을도 다 가고 겨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나선 길은 더욱 질척 거리는 눈에 걷기가 쉽지 않았고 남아있는 장면들을 더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비울 한 달 동안의 한국은 얼마나 더 많은 눈이 올지, 한 달 뒤 돌아온 한국에서는 얼마나 더 많은 눈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Nikon SP Reissue / W-Nikkor.C 1:1.8 f=3.5cm / Kentmere100 / Xtol Dev / VED Scan

2018. 11. 24.

금촌. 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