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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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국도. 아래로는 목포, 위로는 신의주에 이르는 길이며, 내게는 유년시절 서울로 가는 버스가 다니는 길이었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은 너무나도 눈에 선한 익숙한 풍경들 이었지만, 그런 익숙한 풍경도 이제 옛 이야기가 될 날이 머지 않아 보였다. 아니, 벌써 옛 이야기가 되었다.

시간이 가는 속도가 마치 서울과 경기도가 다르다는 것을 온 몸으로 증명하듯 파주에서 고양시를 거치는 구간에서는 그 변화가 크지 않고, 눈에 익숙한 풍경들이 그래도 꽤 긴 시간 이어지다가 서울로 행정구역이 바뀌면 시간의 흔적을 곱게 입은 가게들은 점점 보기 힘들어 지고 높이 자라난 번쩍거리는 건물들이 시야를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시간의 속도는 서울과 가까워 질수록, 그리고 서울의 중심으로 갈 수록 더욱 더 빨라지는 것 처럼 보인다.

구파발부터 연신내까지의 1번 국도의 옛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구파발에서 연신내를 넘어가는 언덕에는 옛날부터 각종 공구가게나 철물점, 건축자재를 파는 가게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뉴타운이 들어오고 재개발이 진행되며 가게들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 시절의 모습을 말끔히 지워낸 거대한 아파트 단지와 복합 쇼핑몰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도로를 서울 방향으로 달리다 불광동을 지날 때 즈음 오른쪽으로 보이는 자리에는 원래 불광동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었다. 하지만 시외버스에서 노선버스로 점차 버스가 바뀌고, 터미널의 정체성이 점점 희미해 질 무렵 시외버스 터미널은 문을 닫게 되었고 한동안 주인을 찾지 못해 굳게 닫힌 문은 열릴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동안 지난 시외버스 터미널 건물은 새 주인을 찾았고 공사 뒤 제2의 삶을 이어가게 되었다. 바뀌기 전의 터미널의 모습은 그저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추억이 되었다.

서울과 더욱 가까워 지며 시간의 속도는 녹번역을 지나며 더욱 빨라진다. 녹번역에서 버스를 갈아탈 때 종종 갔던 작은 편의점과, 퇴근하시던 고모부를 만나 같이 맥주를 한잔 마시며 ‘나는 맥주를 마시면 화장실 가는게 영 불편해서 출발하기 전엔 꼭 화장실을 가야한다.’하시던 이야기를 듣던 호프집도 결국 기억속에만 남아 있게 되었다. 엄청나게 발달한 기술 덕분으로 그런 건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말끔하게 정비된 새로운 아파트와 아파트의 상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모습은 홍제와 독립문을 지나고 영천시장을 거쳐 서울역까지 이어졌다.

예전의 모습은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어 버린 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 아찔한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의 맑은 하늘아래 보이는 길의 모습은 새삼 낯설었고 내가 알고 있던 그 길이 맞나 싶은 어지러운 감정이 뒤섞였다. ‘얼마나 빠르게 바뀌어 가는 시간인가.’, ‘그 시간을 나는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지냈구나.’, ‘이제 그때의 이야기를 추억하려면 어떤걸 보고 다시 떠올려야 하나.’ 같은 답을 찾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어지러이 오갔다.

너무나도 빠르게 가는 시간이란 열차 위에 나름 잘 올라타 있다고 생각하고 지내던 나 였다. 하지만 오늘은 왜인지 그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 휘청하고 옆에 내려서서, 그저 멀어져 가는 열차를 바라보고 있는 망연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면, 생각이 너무 멀리 간 이야기 일까?

2018. 9. 26. 의 단상.

 

 

2012. 4. 18. 녹번역 버스 중앙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