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것들, 변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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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많은 것들은 변한다.
우리는 종종 변하지 않기를 원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변하지 않을거라 굳게 믿었던 것들이 변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변화는 때때로 절대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할아버지.”

우리집 마루의 가운데. 나에게 할아버지는 늘 그곳에 계시는, 그런 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식사를 8시 10분 남짓쯤 드시고, 마루에 앉아 TV를 보셨고, 9시에는 꼭 뉴스를 보셨다. 그러다 10시쯤이 되면 마당에서 화단을 손보시다 11시쯤엔 다시 마루로 돌아오셔서 까무룩 낮잠을 주무셨다. 점심식사를 하시고는 노인정에 나가 다른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내시다 약주를 한두잔 하고 들어오셨다. 저녁식사 후에는 7시 뉴스를 보시며 까무룩 졸다 9시가 되면 주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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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시간 속에서 내게 할아버지는 항상 반복되는 일상 이었다. 학교를 다닐 때도 집에 오면 그시간 그 자리에 계셨고, 취업을 해 지방에 가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렇게 정해진 듯 매일을 보내고 계셨었다. 정말 언제나 그렇게 계속 될 것처럼.

하지만 변화는 갑자기 찾아왔다.

“2014. 5월의 막바지.”

노인정에서 숨이차 돌아오신 분은 우리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같이 약주를 주고 받으시던 다른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이상하다고. 어서 노인정으로 와보라고. 급하게 말씀하셨다.
놀라 노인정으로 뛰어갔을때 할아버지는 내가 알던 할아버지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날 알아 보시지만, 내가 알았던 할아버지는 아니었다. 급하게 병원으로 가 할아버지는 입원을 하셨고 점점 쇠약해 지셨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그렇게 허물어져 갔고,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식구들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걸으실 수 없었다. 식구들을 일부 알아보셨다. 걷지 못하고 움직임도 둔해지셨다. 알아보지 못하는 식구들의 수가 알아보는 식구들보다 커지기 시작했다. 주변 상황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상황이 왔고, 결국은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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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이상을 할아버지와 살며 많은 추억들이 있었고, 그 추억들은 어떤 장소를 지날때 마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일들과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얽혀있는 장소들 덕분에 할아버지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할아버지가 떠나시고 난 자리에 남아있는 나는, 변하지 않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결국 변하지 않는것은 내게 남아있는 기억이 아닐지. 하지만 이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흐려지지 않을지.

그래서 이렇게 글을 적는다.

 

사진 : 2015. 3. 14. Contax Tvs / Kodak 400T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