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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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항 – 서해, 바다.

원래는 대천항이 목적지였다.

답답한 일상에 숨통을 틔워 주겠다며 친한 동생과 찾은 첫 목적지였던 대천항은, 일상의 복잡함에 간판만 주말로 바꾼 그런 모습이었다. 일터에서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과, 각자의 주말을 즐기기 위한 낚싯배 트레일러와, 주말 행락객들 사이에서 너무 정신이 없어 어찌할바를 모르다 급하게 그 자리를 떴다. 순식간에 마무리 되어버린 첫 목적지를 뒤로하고 어디를 갈까 지도를 뒤적이다 결정하게 된 곳은 오천항 이었다. 항구의 이름이 왜인지 모르게 익숙했다. 서해의 해안선을 닮아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대천에서 오천항 으로 접어들었다. 꽤 높다래 보이는 언덕을 차로 넘으니 자그마한 포구가 눈앞에 설핏 들어왔다.

결국, 사진.

그렇게 접어든 오천항 에서의 시간은 오후 4시가 넘어 해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한 시간. 빛은 유난히도 투명했고, 마침맞게 그날 가져간 필름 파우치에는 슬라이드 필름이 한 롤 들어있었다. 고민할 겨를도 없이 필름을 걸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일몰 까지는 3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었고, 마음은 급해지기 시작했다. 한 롤을 어서 다 끝내야 할텐데. 이 날이 아니면 언제 다시 이 필름을 들고 낮시간에 사진을 찍으러 나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처음으로 정박장의 잔교 위로 올라갔다. 하늘의 구름과 정박장의 배들이 유난히 잘 어울려 보였고, 특히 늦은 오후의 금빛에 물들어 파란 하늘과 조화가 좋았다. 몇컷 사진을 찍다 잔교를 내려서려는 찰나, 부두가 얕지만 물에 잠겨있었다. 물은 점점 올라오고, 내려서기는 해야했기에 조금 망설이다 그냥 뛰어 내렸다. 몇센티 안되는 물이긴 했지만 신발을 적시기엔 충분했는지 양말까지 젖어버렸다. 어찌하겠나, 그래도 찍어야지.

 

 

 

 

 

 

 

 

물에 잠기지 않은 길을 따라 포구의 안쪽까지 들어갔다. 서해로 열린 포구인 덕분에 해가 질 때까지 사진을 찍을 빛이 충분했던게 감사했다. 물이 찰랑거리는 부두와,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쉴새없이 나오는 차를 빼라는 안내방송. 평화로운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방송에 뭔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물이 찰랑거리거나 말거나 낚시를 하던 부자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시간이 지나고 이 날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하는 실없는 궁금함도 피어 오르고.

 

 

 

 

 

 

 

 

 

 

 

 

 

 

시간은 반환점을 돌고

주책맞은 배는 일몰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보낸다. 배꼽시계가 울릴 때 끄는 방법은 배를 채우는 것 밖에 없으니 포구 초입에서 보았던 칼국수 집으로 들어갔다. 뜨끈한 바지락 칼국수 한그릇과 찐만두 한접시를 먹고 나니 든든하니 좋았다. 그리고 이 항구가 왜 익숙한가 생각해보니, 알고지내는 낚시광 형의 출조 이야기를 하도 듣다보니 내 귀에도 인이 박였던 것 같다. 출조를 위해 자주 찾는 항구중에 하나라 이야기 한게 기억난다. 배가 불러야 머리도 돌아가나 보다.

아직까지 해는 좀 남아있었고, 근처에 보아두었던 야트막한 언덕으로 발을 옮겼다. 포구 근처 야트막하게 솟은 언덕에 있는 충청수영성은 조선시대에 축조된 성곽이다. 주변에 비해 꽤 높이가 있는곳에 있어 포구를 내려다 보기 좋은 위치다. 언덕위에 오르니 오천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규모가 엄청난 항구는 아니지만 작고 단정한 느낌의 포구다. 부드럽게 바다로 잦아들어가는 멀리 보이는 산의 능선이 보기 좋다.

 

 

 

 

 

 

집으로

큰 나무에 걸린 눈썹달을 찍고 나니 필름도 똑 떨어지고, 시간도 마침 오천항에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대천에서의 번잡함이 오천항에서 정리되는 기분이 들어, 계획없이 들어오게 된 항구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또 한번 이렇게 꽉차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2021. 10. 9.

 

Fin.

Equipment : Nikon S3 Olympic / Carl Zeiss Biogon 1:2.8 f=35mm

Film : Velvia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