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ympus PEN-F / F. Zuiko Auto-S 1:1.8 f=38mm U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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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프레임 카메라, 그 끝나지 않은 이야기 – 그리고 마무리

낙찰, 첫인상

한동안 손이 근질근질 하던 참이었다. 바쁜 업무 때문에 그나마 유일한 취미인 사진도 시들시들 해지던 무렵, 메세지 하나가 또 불을 질렀다. 정크라는데 카메라 상태는 괜찮다는 이야기 였고, 나는 ‘못먹어도 고!’를 외치며 입찰을 해 낙찰받을 수 있었다. 마침 휴가 초 구입한 카메라는 휴가가 끝나기 전에 도착했다. 덕분에 여유롭게 카메라를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 그 카메라가 바로 PEN-F다.

떨리는 마음으로 뜯은 택배 박스에는 PEN-F에 노출계와 콜드슈 어댑터가 모두 장착되어 있었다. 첫인상은 합격. 상판 군데군데 아주 약하게 일어나는 기포가 있지만 비하면 우려할 수준은 아니었다. 외장 노출계의 동작은 확인할 수 없지만 외관은 깔끔했다. 콜드슈 어댑터는 새것과 같은 상태였는데, 상판에 직접 장착을 하는 구조였다. 그 때문인지 콜드슈 어댑터를 뺀 자리에 상처가 있었다. 그래도 세월에 비해 이정도라면 괜찮은 수준이었고, 전체적으로 큰 상처없이 아름답게 보관된 상태였다.

 

가능성과 부활!

구입 당시 카메라 상태 설명은 ‘셔터 작동 안됨, 노출계 작동 안됨’이었다. 상태는 감안하고 샀기 때문에 큰 기대 없이 살살 움직여 보았다. 셔터 장전 레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움직이니, 셔터가 장전이 되었다. 셔터를 눌러보니 셔터가 완전하지 않지만 동작을 한다. 다시 셔터 장전 레버를 살살 만져보니 셔터 장전이 다시 된다. 한번 더 셔터를 눌러보니 1/500에서는 고속 셔터가 제대로 동작을 한다! 조금만 더 만지면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 같았다. 부랴부랴 카메라를 챙겨 충무로로 향했다.

당일에 카메라 수리를 끝내고 카메라를 찾을 수는 없을거라 생각하고 찾아간 길이어서, 언제쯤 수리가 끝나고 택배를 보내주실 수 있는지 여쭤봤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두시간 뒤면 받아갈 수 있다는 것! 금방 카메라를 수리 받았고 말끔한 상태로 내게 돌아왔다. 요즘 믿고 맡길만한 카메라 수리점을 찾기가 어려운데, 이곳도 사장님과 잘 알아두면 앞으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수리를 받고 내손으로 돌아온 카메라는 저속부터 고속까지 잘 동작했고, 더블스트로크 셔터장전 역시 정상적으로 잘 되었다. 가게 사장님은 새 카메라 상태에서 한번도 열어본 적 없이 그냥 보관된 것 같은 상태라 속도 아주 깨끗해 오래오래 쓸 수 있을것이라 하셨다.

 

첫 롤

부랴부랴 찍은 탓에 야간에 찍기 시작했던 탓에 감도를 1600으로 생각하고 촬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처 다 찍지 못했던 필름은 빛이 강했던 한낮까지 함께 담겼고, 노출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했던 탓인지 낮의 사진은 과노출의 사진들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저녁때 촬영한 사진들의 결과를 보면, 카메라가 정상 동작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 수리 후 안심할 수 있었다. 정상 수리가 된 걸 확인하고는 다시 카메라는 제습함으로 들어갔다. 사용해야 할 다른 카메라도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필름을 한 번 넣으면 72컷을 촬영해야 한다는 부담과 생각보다 큰 셔터소리에 손이 잘 안갔던게 큰 이유이다.

 

두번째 롤

2023년 여름, 오랜만에 제습함에서 카메라를 꺼내 만지작 만지작 하다보니 이게 웬일인가. 카메라 셔터가 한두번 동작 하더니 멈춰 버렸다. 왜그러지? 몇번 만져봐도 카메라는 묵묵부답이다. 갑갑한 마음에 다시 카메라를 들고 수리점으로 향했다. 다시 점검을 받고 찾을때 이야기 해주신건, 수리를 아무리 했다고 하더라도 처음 1년 정도는 공셔터라도 눌러줘야 구리스가 적당히 여기저기 잘 순환하고 정상적으로 길이든다는 것이었다. 당시 수리하고 테스트 한 뒤 제습함에 고이 모셔두고 2년여는 꺼내보지도 않았으니 결국은 길이 들기도 전에 다시 구리스가 굳어버렸던 것. 또한번의 점검비용을 내고서야 이것을 배울수 있었다. 그래서 두번째 수리를 마친 이후에는 한달에 한번정도는 숙제삼아 공셔터를 눌러주고 있다. 그리고 작년 12월에는 내친김에 필름까지 넣어 오랜만에 제대로 촬영도 해 줬는데 다행이도 상태는 괜찮은 편. 역시 기계는 꾸준시 써야 고장이 나지 않는듯 하다.

 

긴 여정의 끝

하프 카메라를 사용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때 부터 였다. 처음은 할아버지의 장롱에서 나온 PEN EE-3, 두번째는 재활용 센터에서 건져올린 PEN EES였다. 그 뒤 하프프레임 SLR을 갖고싶어 PEN-FT를 구해 사용하다 안좋아진 상태에 수리점을 다녀온뒤 상태가 이상해져 저렴하게 넘긴게 세번째 카메라. 그리고 이번 글에 나온 PEN-F와 38mm 렌즈가 네번째 카메라 이다. 만족스러운 결과와 조작감을 가진 하프프레임 카메라를 찾기위해 이리저리 방황을 한 게 어떻게 보면 20여년 정도였다. 참 긴 시간이었다. 마음에 드는 카메라와 렌즈가 정상 작동하는걸 완전히 확인한 지금, 이제는 카메라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이제부터는 이 카메라로 더 좋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

 

사진들

외관
손질을 마치고 찾아온 카메라. 바디와 렌즈, 외장 노출계, 콜드슈 어댑터 이다. (맨 위부터 시계 반대방향 순서)

 

호박색과 보라색이 은은하게 섞여 보이는 코팅. 란탄계열 코팅이 되어 있지 않을까? 고딕체의 F가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인 초기 PEN-F

 

 

 

상판은 간결하다. 렌즈의 경우, PEN-FT와 같은 시점에 발매된 경우 조리개 링 상부에는 노출 No.가 하부에는 조리개 값이 각인 되어 있지만 PEN-F와 같이 출시된 초기형의 경우는 상부에 조리개 값이 각인되어 있다. 조리개 링을 보면 이 렌즈는 PEN-F가 발매될 당시에 같이 발매된 것으로 보인다. (렌즈는 바디와 별도 구매)

 

 

 

렌즈를 뺀 상태의 바디. PEN-F 전용 베이요넷 마운트이며, 오른쪽에는 셔터 스피드를 조절할 수 있는 다이얼이 있다. PEN-F의 특징인 가로방향으로 동작하는 퀵리턴 미러도 볼 수 있다. (일반적인 SRL은 상하동작)

 

 

필름실의 모습. 전제척으로 깨끗하나 세월의 흔적은 어쩔수 없다. 파인더 주변부에는 콜드슈 악세서리가 꽂혔던 흔적이 있다. 현재는 제거해 놓은 상태. 스트로보를 사용할 일이 없으니, 구성품으로만 소장하게 될 것 같다. 간결하게 생긴 셔터 장전 레버가 보이는데, 더블스트로크 방식으로 동작하는게 특징이다.

 

 

함께 온 PEN-F 전용 노출계. 배터리를 넣고 왼쪽에 보이는 금속 막대를 누르면, 수광부의 마스크가 열리며 노출값을 측광할 수 있다. 셔터스피드와 감도를 세팅해 놓고, 적정 F값을 제시해 주는 방식.

 

 

ASA(흔히 알고 있는 ISO와 같다고 보면 된다)를 세팅할때 눌러주는 버튼과, 셔터스피드를 조절할 때 사용하는 은색 다이얼. 바디의 셔터스피드 다이얼에 이 노출계를 끼워 사용하는데, 두 다이얼이 연동되어 돌아간다.

 

 

카메라 바디와 노출계

 

 

첫번째 롤

 

 

 

 

 

 

 

 

 

 

Kentmere400 (EI1600) / Xtol dev / 2021. 10~11

 

두번째 롤

 

 

 

 

 

 

 

 

 

 

 

 

 

 

Kentmere400 (EI400) / Rodinal dev / 2023. 12.

 

 

※참고

Wikipedia – Olympus Pen-F